고창군 '동리정사 복원 사업' 추진…'주변 건물 이전 선행돼야'
입력 : 2020. 06. 17(수) 14:50
조선후기 판소리 이론과 교육의 역사적 현장이자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 여섯마당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인 고창 동리정사가 본격적으로 복원된다.
고창군은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과 전국 판소리꾼들의 수양터인 '동리정사' 복원을 위해 ‘판소리박물관 이전과 미술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보고회는 ‘동리정사’ 재현의 선결 과제인 ‘고창판소리박물관’과 ‘군립미술관’이전에 대한 타당성과 기본계획 중간 성과물을 전북경제연구원이 보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북경제연구원 이제철 박사는 "판소리 박물관 이전(移轉)에 대한 주민 설문조사 결과 처음과는 달리 설명을 듣고 난 후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다"며 "판소리박물관은 인근 모양성과 동리 고택 등 관람 동선이 끊이지 않게 동리정사와 인접한 최단 거리 장소에 이전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존 미술관도 주위 환경과 어울리면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문화시설간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창문화연구회 이병렬 사무국장은 “동리정사 주변은 비보풍수가 매우 발달한 지역임으로 동리정사 재현과 판소리박물관 이전 공사시 중거리 당산과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 가족 당산이 훼손되지 않고 조경으로 잘 살려내 멋스러운 옛 정취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창군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4000여평 고택을 복원해 ‘동리정사 재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리정사는 동양의 세익스피어로 불리우는 동리 신재효 선생이 널따란 집을 자신의 호를 따서 그 안에 소리청을 만든 곳이다.
이후 최초의 여류 국창인 진채선 등 전국의 소리꾼들을 불러 모아 숙식을 제공하며 판소리 사설을 일일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공간이다.
동리정사는 그가 여생을 마치던 1884년(고종 21)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현재 초가 6칸(중요민속자료 39호) 사랑채만 남아 있다.
당대에는 문하에 많은 광대들과 소리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그 전체 부지만 4000여평에 이르며 중앙의 석가산(石假山)과 연못을 중심으로 안채와 연당, 정자, 행랑채, 장례당 등의 가옥이 있었다.
동리정사는 일가친척이나, 기생, 광대, 수습생들이 머물던 처소 등 대략 50여 가구가 한 울타리 안에서 집단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동리정사는 판소리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재창조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거시적 안목을 갖고 긴 호흡으로 백년대계를 준비해 나가는 마음으로 추진하되, 판소리박물관과 미술관 이전 등 중지를 모아 결정된 일은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고창뉴스
고창군은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과 전국 판소리꾼들의 수양터인 '동리정사' 복원을 위해 ‘판소리박물관 이전과 미술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보고회는 ‘동리정사’ 재현의 선결 과제인 ‘고창판소리박물관’과 ‘군립미술관’이전에 대한 타당성과 기본계획 중간 성과물을 전북경제연구원이 보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북경제연구원 이제철 박사는 "판소리 박물관 이전(移轉)에 대한 주민 설문조사 결과 처음과는 달리 설명을 듣고 난 후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다"며 "판소리박물관은 인근 모양성과 동리 고택 등 관람 동선이 끊이지 않게 동리정사와 인접한 최단 거리 장소에 이전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존 미술관도 주위 환경과 어울리면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문화시설간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창문화연구회 이병렬 사무국장은 “동리정사 주변은 비보풍수가 매우 발달한 지역임으로 동리정사 재현과 판소리박물관 이전 공사시 중거리 당산과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 가족 당산이 훼손되지 않고 조경으로 잘 살려내 멋스러운 옛 정취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창군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4000여평 고택을 복원해 ‘동리정사 재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리정사는 동양의 세익스피어로 불리우는 동리 신재효 선생이 널따란 집을 자신의 호를 따서 그 안에 소리청을 만든 곳이다.
이후 최초의 여류 국창인 진채선 등 전국의 소리꾼들을 불러 모아 숙식을 제공하며 판소리 사설을 일일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공간이다.
동리정사는 그가 여생을 마치던 1884년(고종 21)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현재 초가 6칸(중요민속자료 39호) 사랑채만 남아 있다.
당대에는 문하에 많은 광대들과 소리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그 전체 부지만 4000여평에 이르며 중앙의 석가산(石假山)과 연못을 중심으로 안채와 연당, 정자, 행랑채, 장례당 등의 가옥이 있었다.
동리정사는 일가친척이나, 기생, 광대, 수습생들이 머물던 처소 등 대략 50여 가구가 한 울타리 안에서 집단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동리정사는 판소리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재창조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거시적 안목을 갖고 긴 호흡으로 백년대계를 준비해 나가는 마음으로 추진하되, 판소리박물관과 미술관 이전 등 중지를 모아 결정된 일은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gcnews@gcnew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