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전봉준장군 생가 철거한다"…역사적 고증 부족
입력 : 2019. 07. 25(목) 10:33
역사적 고증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생가가 완전 철거된다.
고창군은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생가가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채 지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건립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온 생가를 완전히 철거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001년 지어진 생가는 안채 1동과 헛간 1동 등 모두 2동으로 안채는 정면 5칸으로 지붕은 초가 형태로 지어졌다.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3일 고창읍 당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 무렵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생가는 당시에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기간에 모두 소실됐다.
군 관계자는 "복원할 당시(2001년) 충분한 고증 없이 지어져 그간 복원된 생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며 "현재 있는 당촌 생가는 완전히 철거하고 향후 복원 방침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까지도 생가 고증에 대한 부문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생가에 대한)확실한 고증이 이뤄진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생가터에 표지석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군은 올해 확보된 예산을 들여 생가를 모두 철거할 계획이며 이와 함께 군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에 속도를 더욱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고창뉴스
고창군은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생가가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채 지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건립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온 생가를 완전히 철거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001년 지어진 생가는 안채 1동과 헛간 1동 등 모두 2동으로 안채는 정면 5칸으로 지붕은 초가 형태로 지어졌다.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3일 고창읍 당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 무렵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생가는 당시에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기간에 모두 소실됐다.
군 관계자는 "복원할 당시(2001년) 충분한 고증 없이 지어져 그간 복원된 생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며 "현재 있는 당촌 생가는 완전히 철거하고 향후 복원 방침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까지도 생가 고증에 대한 부문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생가에 대한)확실한 고증이 이뤄진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생가터에 표지석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군은 올해 확보된 예산을 들여 생가를 모두 철거할 계획이며 이와 함께 군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에 속도를 더욱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gcnews@gcnew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