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봉덕리 고분 ‘백제지역 최대 규모의 마한분구묘’
고창 봉덕리 발굴조사 중간보고회
5세기 전후 고분으로 중국, 일본과 활발한 교류 추정
입력 : 2008. 12. 29(월) 09:50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지난 26일 학계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1호분의 제1차 발굴조사를 마치고 중간보고회를 가졌다.

이날 중간보고회에는 지난 10월부터 발굴해온 봉덕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보고회로써 학계 및 지역주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었다.



고창 봉덕리 1호분은 지난 2000년 본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고창지역의 분구묘 실측조사에서 밝혀진 고분 4기 가운데 하나로 정상부가 평탄하게 조성된 절두방대형(截頭方臺形) 분구묘로 길이 72m, 폭 50m, 높이 7m 규모를 가진 백제지역에서 보고된 고분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발굴조사결과, 분구 내 매장시설로는 횡혈식석실 2기, 파괴분 1기, 소형석곽 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또한 분구의 유실을 방지하게 위한 호석시설과 주구가 확인됐다.

출토유물은 매장시설인 횡혈식석실 내부에서 장신구를 비롯해 직구단경소호·완·개배·병형토기·유공광구소호 등의 토기류, 철겸·철도자·관정 등의 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3호 석실의 중국 남조대의 청자호편과 1호, 3호 석실의 원통형토기 등은 중국과 일본과의 당시 국제교류를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을 받았다.



최완규 소장은 “봉덕리 1호분은 지금까지의 마한 고지에서 조사된 분구묘와는 달리, 구릉의 말단부를 기획적으로 분할·삭토하고, 삭토한 흙을 분구 상면의 성토에 다시 사용하여 분구를 거대하게 조성한 후, 분구의 정상에 묘실를 두어 다수의 석실을 안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독특한 분구의 조성방법이 사용되었다”며 봉덕리 고분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3호 횡혈식석실에서 출토된 중국 남조대의 청자호편을 통해서 볼 때, 봉덕리 1호분의 축조세력은 가깝게는 백제나 영산강유역의 마한세력, 멀리는 중국이나 일본 등과도 폭넓게 교류하고 있었던 집단이었다고 밝혔다.

조사된 매장시설의 구조나 출토 유물을 통해서 볼 때, 이 고분은 5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주변 지역에서 조사된 백제시대 횡혈식 석실분과의 비교 검토를 통하여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이 지역으로 횡혈식 석실분이 유입된 경로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 발굴조사는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의 밀집지역인 고창지역의 마한문화가 5세기 중반 대에 어떠한 형태로 변화 성장해 가는지, 나아가 고창지역 마한문화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고창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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