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유심조' 모든것은 마음먹기 달렸다.
입력 : 2010. 08. 30(월) 14:24
1. 금년 팔월 말일자로 정년퇴임을 하시는데 소회는 어떤가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선지 덤덤합니다. 따져보고 계산해보면 많은 세월을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끝나는 지점에 도달한 것도 그 시간들이 나의 거칠 곳은 다 거쳐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이 맞이할 순서이지요. 재직기간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순탄하게 마칠 수 있음이 퍽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활할 수 있도록 나와 함께한 만남과 인연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2. 40년이 넘게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교육의 철학이나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철학이라기보다는 소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 하려 했습니다. 재주가 뛰어나지 못하니까 더욱 성실하려 했고, 다른 쪽은 거의 다 포기하고 살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오직 학교만 알고 살았습니다. 돈 벌려고 땅 사고, 아파트 사고, 증권 사는 일을 하지 못했고, 권력이나 세상과 타협하러 아무에게나 고개 숙이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자는 교육의 현장에서 더욱 철저하게 머물러야 하고 교육을 위하여 모든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좌우명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면 그렇고, 별로 좋지 않은 일도 괜찮다고 내가 생각하면 괜찮으니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으로 여깁니다.
3. 그동안 교육을 위하여 많은 실적을 거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다섯 가지만 말씀하여 주시지요.
-오래된 교육자로서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교육실적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이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지극히 민망합니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모교 고수초등학교에서 초임교사 시절 6년간 밤낮없이 독서지도를 하여 ‘자유교양대회’에서 군대표와 도대표를 길러낸 일. 고수남초등학교로 옮겨 6학년을 맡아 ‘무시험 진학 정치학력고사’에서 3년 연속 우수한 성적을 냈던 일. 정박아교육, 미감아교육, 벽지아동 교육 등 그늘지고 소외된 아동들에게도 열성을 다하여 교육한 일. 흥덕초등학교로 초임교장 발령을 받아 의욕적인 학교경영을 하여 ‘전라북도 최우수 학교경영상’을 수상한 일. 고창교육장으로 있으면서 전국 최초로 관내 전 초등학교(21교)에 하루에 1시간씩 ‘영어방과후학교’를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실시하여 전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고창군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그 토대를 구축한 일을 미약합니다마는 들고자 합니다.
4. 교육현장에서 수없는 에피소드가 있었을 줄로 압니다. 그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고수초등학교에서 고전읽기부를 전념하여 지도하던 때의 일입니다.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수고한다고 학부모들이 떡도 해오고 각종 음식도 가져오며 많은 격려도 해 줬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났던지 밤늦게까지 책을 읽게 하고는 교실의 가운데를 책상으로 나누어 놓고 왼쪽에서는 여학생 오른쪽에서는 남학생 나는 교단에서 잠을 자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열정이었으나 학부모들은 그런 나를 더욱 고마워했습니다. 어디 지금 그랬다면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것은 35년 전의 이야기니까 그야말로 옛날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5. 많은 제자를 배출해 내셨으니까 보고 싶은 제자들도 많으시겠지요? 그 중에서 지금 누가 보고 싶으세요.
-그렇습니다. 보고 싶은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요. 공부 잘한다고, 말 잘 듣고 성격 좋다고 예뻐한 제자, 속 썩히던 말썽꾸러기 제자, 평범하면 평범해서 좋은 제자들을 오랜 동안 못 만날 때 그렇게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은사님들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하고 살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궁금하고 보고 싶은 제자들이야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창서초등학교 호암분교(미감아학교)에서 가르친 공부 잘하고 똑똑한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6.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쉽고 후회스러웠던 일은 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자로서 무엇을 가장 후회하고 계십니까?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세 번의 체벌입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 아이들은 얼마나 상처가 컸겠습니까?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반장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시험을 잘못 봤다고 꾸중하니까 시험지를 찢어버려서 그럴 수가 있냐고, 소풍가서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 위험한 짓 했다고 부모가 보는 앞에서 구타한 일. 선생님이 화가 났는데 말대꾸했다고 다리가 멍들게 때린 일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도 매우 후회스럽고 스스로의 혐오에 빠집니다.
7. 사모님도 현직 교장으로 계시는데 일로동행(一路同行)하시면서 감회는 어떠신지요?
-살아갈수록 빚더미만 커집니다. 아마 윤회설대로라면 저세상에서는 그 사람의 하인이나 일하는 소로 태어날까 두렵습니다. 나를 챙겨서 세상에 반듯하게 내놓으려 애쓰고, 시장 한번 가서 뭘 하나 사올 줄 모르는 남편이라 혼자 알아서 알뜰하게 살림하여 집안을 꾸려가고, 직장에서도 자기의 역할을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다하여 충실하게 해온 일인다역의 내자에게는 입이 열이라 해도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는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사람의 은덕이라고 생각합니다.
8. 고창교육장을 만 4년 동안 역임하셨는데 특히 역점을 두어 추진하신 사업은 무엇인가요?
-누구보다도 고창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고창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 고창의 교육을 책임 맡고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그 좋아하는 ‘시’를 쓰지도 읽지도 않으려 했으며, 즐기던 ‘술’도 참거나 1차로만 제한하며 근신하는 자세로 근무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귀향을 가서 처음 몇 년간은 마음을 잡지 못하여 음주로 세월을 보내는데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주모가 학자니까 학문을 하시라고 집을 한 채 마련해 주었습니다. 깊이 각성한 정약용은 그 집 현판을 사의제(四宜齊)라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네 가지 마땅히 지켜야 할일이라는 뜻입니다. 그 네 가지란 마음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하고, 용모를 단정하게 하되 더욱 단정하게,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라는 것을 지키며 학자로 돌아가서 그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이를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교육행정에 매진하였습니다. 역점으로 추진한 사례를 세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는 고창군 관내 모든 초․중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학교 좋은 학교 만들기’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학교마다 좋은 학교를 만들어서 좋은 교육을 함으로써 학생 모두 다 성공하는 교육을 하고자 해섭니다.
둘째는 학생들을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사람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창의성 네 가지 프로그램 적용’을 했습니다. 매시간 창의성 수업하기와 창의성의 원천인 독서 많이 하기, 전국창의축전의 내실화와 발명교육을 활성화 시켰습니다.
셋째는 세계화 지구촌화의 시대에 맞는 글로벌인재를 양성하기위하여 ‘영어방과후학교 운영’으로 전국 최초로 고창군내 모든 초등학교(21교)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하루에 1시간씩 영어공부(학년별 영어동화 40권 읽기)를 하여 국제적 의사소통능력을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9. 일년 반의 짧은 재직기간 고창초등학교 교장을 하면서 중점을 두어 하신 일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 만족하세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금 더 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합니다. 내가 교육장으로 있을 때 학교에서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실제로 추진하여 성과를 거양하려고 했습니다. ‘좋은 고창초등학교 만들기’로 실내외 환경을 의욕적으로 갱신하고 학생들의 생활과 면학분위기를 최대한 조성하였으며, ‘영어 전국 으뜸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교직원들과 힘을 모아서 매진하였다고 봅니다. ‘효도하겠습니다’ 라는 효행인사를 통하여 ‘바른 성품을 지닌 어린이’로, 책을 많이 읽도록 하여 ‘창의적인 어린이’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으로 ‘학력이 탄탄한 어린이’로, 영어를 잘하게 하여 ‘국제적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어린이’로, 꿈오름장을 활용하여 ‘도전정신이 강한 어린이’로,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특기와 소질이 탁월한 어린이’로, 가볍게 뛰거나 빠르게 걷기를 통하여 ‘몸이 튼튼하고 건강한 어린이’로, 영어노래와 한글노래 부르기로 ‘마음이 아름답고 건전한 어린이’로 육성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고창초등학교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교육해야할 지를 뚜렷하게 알고 교육을 함으로써 교육의 성과를 더 크게 거양할 수 있었고 학생 모두 다 성공하는 교육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0. 고창초등학교 후임으로 오실 분이나 후배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기회에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어 전국 으뜸학교 만들기’라든지는 더욱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후배 선생님들! 학생들을 오직 사랑으로만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방법으로 교육해야 성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보다는 학생과 교육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나보다는 학교와 지역사회 나아가서 국가를 사랑하는 열정이 앞서야 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고, 제자를 내 아이처럼 사랑하며,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교단에 서십시오.’하는 말씀입니다.
11. 학생들의 곁을 떠나시면서 고창초등학교 1400명의 재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다가 마치게 되어 매우 행복했고 보람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다 잘 되었으면 합니다. 잘될 사람이 되려면 어려서부터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좋은 쪽으로만 행동하고,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자라서 잘되어야 개인마다 행복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살기 좋은 사회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될 사람이 되려거든 이렇게 하세요. ‘공부는 힘 드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공부를 놀이라 생각하며 즐기세요. 공부를 부모나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고 반성하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세요. 그리고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워서 도전하고 그 도전마다 즐거운 노력과 보람된 땀을 흘려 성공하세요. 이렇게 하는 학생은 결코 잘될 것입니다.
12. 학부모님들에게 자녀교육 이렇게 하면 좋다고 권하실 말씀은?
-자녀교육은 ‘부모와 자녀의 미래요 희망이며 우선입니다.’ 여러 가지로 어렵더라도 순간적으로나 긴 시간을 두고라도 챙겨야할 것은 무엇보다도 자녀교육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보면서 어쩜 그대로 닮아갑니다. 자녀를 사람다운 사람, 바른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평소의 생활에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또한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이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정명훈 씨의 어머니는 정명화는 ‘첼로’ 정명훈은 ‘피아노’ 정경화는 ‘바이올린’ 정명소는 ‘플루트’ 정명근은 ‘비올라’ 등 7남매를 모두 다 다른 기악가로 키웠습니다. 어머니가 다 잘해서 그렇게 가르쳤겠습니까? 정명훈의 어머니는 7남매에게 한 가지 악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외 ‘여건’을 갖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정명훈의 어머니처럼 교육적 관심을 갖고 ‘교육적 분위기’와 ‘교육적 여건’을 갖춰주는데 노력하십시오.’ 부모는 당장 보는 시험에 몇 점을 맞느냐보다는 더 멀리 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독서를 많이 하도록 하여 어휘력과 간접경험을 풍부하게 갖추도록 하는가 하면, 영어를 잘 하도록 하여 국제적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글로벌인재로 육성하고, 특기적성교육으로 타고난 소질을 개발시켜 주시며, 나만 생각하지 않고 이타정신을 갖게 하여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자녀로 기르시기 바랍니다.
13. 교육 일선현장의 교사, 교감, 교장을 하시고, 전문직으로써 장학사와 학무과장, 교육행정가로서 교육장을 거치시면서 우리 교육에 대하여 다방면에서 많은 생각을 갖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중앙과 지방, 보수와 진보의 교육정책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상당히 커서 당분간은 교육 갈등의 시기로 보여 집니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겨서 교육의 발전을 도모해야 된다고 봅니다.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이 세계에서 앞선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학부모의 교육열에 의한 잘하는 학생을 더욱 잘하게 하는 ‘경쟁교육’을 지향하고, 핀란드는 잘하는 학생은 스스로 하게 하고 부족한 학생들을 잘하게 하는 ‘협동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경쟁교육’과 ‘협동교육’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따지지 말고, ‘경쟁교육’을 하면 좋은 것은 ‘경쟁교육’을 하고 ‘협동교육’을 하면 좋은 것은 ‘협동교육’을 하여 경쟁과 협동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의 환경과 현장을 만들어 교육의 효율성을 살려나가는 세계적이고 생산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 문학 중에서도 ‘시’를 쓰시는데 왜 ‘시’를 쓰시며, 그동안에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하고, 상도 받으신 줄로 압니다. 그 내용을 좀 말씀해 주실까요?
-사람은 누구나 몇 가지는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소유하고 있듯이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이 시 읽기와 시 쓰기입니다. 시는 내 생각과 사유를 간명하게 표현해서 그 때의 삶의 흔적으로 간직하기에 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개인의 역사를 담아 둔다고 생각하기에 씁니다. 그래서 순수 문학성을 살리는 시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메시지가 등뼈를 이루는 시를 썼습니다. 그들에게서는 교육자의 냄새가 풀풀 나지요. 시집은 이번에까지 6권을 상재했습니다. 《세월 위에 띄우는 빈 배 》《운문으로 일어서는 작은 전설》《미래가 보이는 거울》《바람처럼 구름처럼》《얘들아, 날개를 달자》《생각은 미래의 얼굴》입니다. 문학상은 ‘영랑문학상’ ‘공간시인협회상’ ‘고창문학상’ ‘대한문학상’을 받았습니다마는 언제나 교육을 먼저로 생각했으며, 문학은 음주보다도, 친구보다도, 그냥 할일 없이 노는 것보다도 왠지 밀려나곤 했습니다.
15. 정년퇴임과 출판기념회를 겸하신다는 데요. 식은 어떻게 하고, 어떤 책을 발간하시는지요?
-그냥 인사도 없이 가기에는 인사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소리 낼 일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퇴임식에는 학교에서나 교육청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분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몇 분들만 모시려고 합니다. 8월 28일 10시에 양고살재 아래 ‘그랜드 호텔 연회장’에서 갖고자 합니다. 오시는 분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는데요. 그것은 시집 《생각은 미래의 얼굴》과 산문집《교육은 미래요 희망이며 우선이다》를 사은품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16. 다시 태어나도 교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요?
-교육자로서 내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돌아봐도 그 길에 대하여 크게 후회가 없는 것은 미성숙한 아동의 발달을 도와서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바른 인성을 갖추게 하고, 밝은 미래로 안내하는 일을 해 왔으니 직업 중에 이보다 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이 있겠냐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만이 더욱 더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는 일은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학문의 깊이도 더 깊고, 더 수많은 사람에게 더 큰 수혜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일말입니다.
17. 정년퇴임 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조금 공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요, 이제는 건강과 행복보다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것이면 최고이고 다죠. 공개할만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어린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학교신문 ‘늘 푸른 소나무’ 호외 발간 인터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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