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 발상지 고창 동도사서 면암 추모제
입력 : 2009. 10. 11(일) 10:56

최덕근 성균관장이 면암선생 등 항일의병장과 의병들에게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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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대유학자이자 항일독립지사인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과 송재 고용진(松齋 高龍鎭) 선생, 수남 고석진(秀南 高石鎭) 선생, 송천 고예진(松川 高禮鎭)선생을 기리는 뜻깊은 추모제가 10일 고창군 신림면 가평 도동사(道東祠)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최근덕 성균관장을 비롯해 성균관 집행부, 이강수 고창 군수, 송영래 고창문화원장, 유림과 지역주민, 후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선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고창 동도사는 면암선생은 1880년대~1890년대에 자주 오가며 8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수남선생과 송천선생이 인재를 양성했던 곳이다.
독립지사인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1905년 말 을사조약에 항거해 의병을 계획한 뒤 충남 청양에서 단식투쟁 중이던 면암에게 의병 봉기를 강력히 주청해 허락을 받았고, 이후 도동사에서 항일 의병 독립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의병 100여명을 소집해 본격적인 봉기준비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6년 4월13일(음력) 태인 무성서원(면암과 같은 경주최씨인 최치원선생을 모신 곳)에서 면암선생을 의병대장으로 한 의병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1,000여명으로 불어난 의병들은 고창 동도사를 중심으로 태인, 정읍, 순창, 구례, 곡성 등에서 전과를 올렸으나 1906년 4월22일(음력) 강력한 병력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패한 뒤 초기 의병활동의 뜻을 접게된다.
면암선생은 일본 쓰시마섬에 끌려간 뒤 단식하다 옥사했고, 송재, 수남, 송천선생 역시 옥고를 치뤘으며 이후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던 유림의 전국적인 비밀결사조직인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서 활약했다.
특히 송천선생이 고종황제로부터 1914년 2월에 독립의군부 활동과 관련해 받은 칙명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수록되고,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돼 있으며, 고종이 독립에 계속 뜻을 두고 독립운동세력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사료가 되고 있다.
이후 수남, 송천선생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청원을 넣기 위해 전국의 유림대표 137인이 참여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 창충단공원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있다.
고창 신림면 가평리 동도사는?
도동사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이자 고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곳에선 1946년부터 면암선생과 수남선생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962년부터는 송천선생을, 1992년부터는 송재선생까지 함께 기리고 있다.
이밖에 면암선생은 대한민국독립장 1호이며,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독립운동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동도사는 1880년대에는 인재양성소로 명성을 날렸으며 을사조약 이후 항일의병의 중심지로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곳이다.
/ 박제철기자 jcpark@sjbnews.com
고창뉴스
한말 대유학자이자 항일독립지사인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과 송재 고용진(松齋 高龍鎭) 선생, 수남 고석진(秀南 高石鎭) 선생, 송천 고예진(松川 高禮鎭)선생을 기리는 뜻깊은 추모제가 10일 고창군 신림면 가평 도동사(道東祠)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최근덕 성균관장을 비롯해 성균관 집행부, 이강수 고창 군수, 송영래 고창문화원장, 유림과 지역주민, 후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선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고창 동도사는 면암선생은 1880년대~1890년대에 자주 오가며 8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수남선생과 송천선생이 인재를 양성했던 곳이다.
독립지사인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1905년 말 을사조약에 항거해 의병을 계획한 뒤 충남 청양에서 단식투쟁 중이던 면암에게 의병 봉기를 강력히 주청해 허락을 받았고, 이후 도동사에서 항일 의병 독립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의병 100여명을 소집해 본격적인 봉기준비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6년 4월13일(음력) 태인 무성서원(면암과 같은 경주최씨인 최치원선생을 모신 곳)에서 면암선생을 의병대장으로 한 의병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1,000여명으로 불어난 의병들은 고창 동도사를 중심으로 태인, 정읍, 순창, 구례, 곡성 등에서 전과를 올렸으나 1906년 4월22일(음력) 강력한 병력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패한 뒤 초기 의병활동의 뜻을 접게된다.
면암선생은 일본 쓰시마섬에 끌려간 뒤 단식하다 옥사했고, 송재, 수남, 송천선생 역시 옥고를 치뤘으며 이후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던 유림의 전국적인 비밀결사조직인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서 활약했다.
특히 송천선생이 고종황제로부터 1914년 2월에 독립의군부 활동과 관련해 받은 칙명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수록되고,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돼 있으며, 고종이 독립에 계속 뜻을 두고 독립운동세력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사료가 되고 있다.
이후 수남, 송천선생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청원을 넣기 위해 전국의 유림대표 137인이 참여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 창충단공원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있다.
고창 신림면 가평리 동도사는?
도동사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이자 고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곳에선 1946년부터 면암선생과 수남선생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962년부터는 송천선생을, 1992년부터는 송재선생까지 함께 기리고 있다.
이밖에 면암선생은 대한민국독립장 1호이며,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독립운동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동도사는 1880년대에는 인재양성소로 명성을 날렸으며 을사조약 이후 항일의병의 중심지로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곳이다.
/ 박제철기자 jcpark@sjbnews.com
gcnews@gcnews.kr
